자장율사가 나무오리를 날려 보내 칡꽃을 물어온 곳에 통도사를 창건

양산시 하북면 삼수리(三帥里)는 조선 초기 유명한 세 형제 장수가 태어난 곳이기에 붙여진 지명이다.

양산(梁山)이라는 지명 또한 그들의 부친인 양산부원군 이전생과 관련되어 있다. 지산리와 초산리는 양산군수 권만이 영축산의 지세를 꺾기 위해 소나 풀과 관계된 지명으로 고친 결과이다.

양산시 산막동은 원효가 반고굴에서 수도할 때, 요석공주가 산에 막을 치고 그를 기다렸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효감천은 오준이라는 효자가 가난하여 부모님 제사상에 올릴 술을 마련하지 못했는데 다행히 어머니 무덤에서 술이 솟아나 그것으로 제사를 모셨고, 삼년상이 끝나자 술 대신 물이 솟았다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원동면의 신동대굴은 400년 전 신동대란 사람이 살았던 굴이고, 화장산(花藏山)은 추운 겨울에 복숭아꽃이 피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연지봉(戀池峰)은 옛날 두 청춘 남녀가 이루지 못할 사랑을 비관하여 이곳에서 자살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주천(酒泉)은 순흥안씨가 그 샘에서 나온 술로 남편을 간병했는데 이를 귀히 여겨 마을 사람들이 샘 옆에 주천당을 짓고 부인의 열녀비를 세웠다 한다. 선바위 앉은바위는 어떤 장수가 바위산에 앉았다가 일어나자 바위들이 밀려 떨어졌는데, 자연스럽게 선 모습은 선바위가 되고, 누운 것은 앉은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동면의 수박바위는 수박을 쪼갠 것같이 생긴 바위다. 옛날 이 지역 장군이 큰 바위에 숨었는데, 나라에서 그를 잡지 못했다. 결국 장수의 태를 자른 억새풀로 바위를 잘라서 장수를 잡았다고 한다. 비석골은 김해 송장군이 자신보다 뛰어난 장수가 태어날 것을 우려하여 산맥의 기를 끊으려고 세웠다고 한다. 갑옷바위는 송장군이 죽은 후 갑옷을 넣어둔 곳이다.

굼바우는 구멍이 뚫린 바위이다. 왜시등(倭屍嶝)은 임진왜란 때 왜병들의 무덤이 등성이가 되었다고 하여왜시등이다. 장승박 전설은 돌로 된 장승이 기울어지는 쪽의 마을 처녀들은 바람이 난다는 것이다. 피수골은 용이 등천하면서 피를 흘린 자욱이 바위에 남았다고 해서 피수골이다.

양산시 하북면에는 조선 초기 양산 출신으로 유명한 장수인 이징석·이징옥·이징규 형제에 대한 전설이 있다. 세 형제가 영산(靈山)의 현몽으로 태어났다는 출생담, 현몽한 산에서 각각 공부한 이야기, 이징옥이 멧돼지를 몰고 온 이야기와 탐관오리를 응징하고 호식의 한을 풀어준 이야기, 이징규가 용마를 시험한 이야기, 세 형제가 50여 명의 도적떼를 사로잡은 이야기들이 있다. 천성산 적미굴은 최제우가 수도하여 천주 강림의 도를 깨닫고 동학을 창설한 곳이다. 양산시 호계동의 반고굴은 원효가 수도한 곳이다. 원효는 의상과 함께 혁목암에서 낭지법사로부터 중생을 제도할 방법을 얻었다고 한다.

원동면의 포천산에서는 다섯 비구가 아미타불을 외우며 극락세계를 구한 지 몇 십 년에 성중(聖衆)이 서쪽에서 와서 그들을 맞아 갔다. 그들이 유해를 버린 곳에 통도사 중들이 정자를 짓고 치루라고 했다.
 범서부락에서는 박초라는 사람이 기지를 발휘하여 화적떼를 물리쳤다는 얘기가 전해 온다. 양산의 어느 마을에 김씨 할아버지 내외가 지친 과객에게 팥죽 한 그릇을 대접하고 신 한 켤레를 주었는데, 그 과객이 할아버지의 아들에게 좋은 묫자리를 알려주어 만석군이 되게 했다는 얘기도 전한다.

1869년(고종 6) 양산군 구포면이 동래군으로 탈속하게 되자 사림 세 사람이 상경하여 양산군에 환속토록 조처받았다. 그것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이 용연리 세 비석이다. 원동면의 오의정에는 밀양부사가 까마귀의 보은으로 살인 사건을 해결했는데, 까마귀의 인도로 하룻밤을 보낸 정자를 오의정이라 명명하고 현판을 올리게 했다는 얘기가 전한다. 작원관(까치관)은 동래와 서울 간 국도의 원문(院門)으로 임진왜란 때는 왜구에 대항한 곳이다. 가야진사는 삼한 시절부터 국가적 의식이 행해지던 사당이다. 용과 관련한 창건 설화가 있다.

양산 지역에는 통도사와 관련한 연기 설화가 많다. 통도사는 자장율사가 나무오리를 날려 보내어 칡꽃을 물어온 곳에 터를 잡아 창건한 사찰이다. 통도사 절터는 원래 큰 못이었는데, 자장율사가 못에 사는 아홉 용 중에서 여덟을 몰아내고 눈먼 용 한 마리만 살려 절을 수호하게 했다고 한다. 통도사 사리탑에는 신이한 전조들이 나타났으며,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승려 우운이 관음보살의 도움으로 중간했다고 한다. 자장암에는 자장율사가 수도할 때 손가락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 불력이 있는 금개구리를 살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내원사 계변에 칡넝쿨이 없는 것은 원효대사의 제자가 탁발을 나갔다가 칡넝쿨에 발이 걸려 양식을 쏟고 빈 손으로 왔기에 주력(呪力)으로 그 곳에 칡넝쿨이 자라지 못하게 한 데서 유래한다. 원효암과 의상대에는 여인으로 화한 관세음보살의 도움으로 원효가 먼저 도를 깨친 후 의상도 도를 얻게 되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저작권자 © 일간경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