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의 本鄕과 根源을 제대로 알려야

손창완 기자

지난 4월11일은 의미가 남다른 날 이었다. 우리나라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이 100주년이 되는 날이고 평택시는 인구가 50만명 진입하는 날이었다. 그 어느때보다 의미가 깊은 날 이었다. 이날 만나는 지인들과 이야기 화두는 100년전 우리 지역은 어떠한 상황이었을까 이었다?

평택시는 고려시대 이래로 오랫동안 여러 개 군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진위현(振威縣)·평택현(平澤縣)·수원부·양성현(陽城縣)·직산현(稷山縣)·영신현(永新縣)·광덕현(廣德縣)·용성현(龍城縣)·경양현(慶陽縣) 등 9개 군현과 송장부곡(松庄部曲)·백랑부곡(白浪部曲)·포내 미부곡(浦內彌部谷)·종덕장(宗德莊)·오타장(吾朶莊)·청호역(菁湖驛) 등 7~9개 특수행정구역이 현재의 평택시에 산재해 있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일부 현이 폐현되고 특수행정구역이 각 군현이 직접 관할하게 되면서 평택현·수원부·진위현·양성현·직산현 5개 군현으로 재편되었다. 옛 평택현은 백제 때 하팔현(河八縣)이었고 고려 때 '평택'으로 고쳤다, 조선 태종 때 충청도로 편입하고 현감(縣監)이 파견된 현이 되었다. 이후 평택현은 때로는 양성현 혹은 직산현에 통합되기도 하였고 관할도가 경기도로 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 1896년 구한말 행정구역 개편 때 수원군·진위군· 평택군 3개 군으로 분할되게 되었다. 그리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을 계기로 진위군으로 대부분 통합되었다. 1938년에 진위군이 평택군(平澤郡)으로 바뀌어 지내오면서 지금의 평택시가 형성되었다

1981년에 송탄읍이 송탄시로, 1986년에 평택읍이 평택시로 각각 분리되면서 현재의 평택시는 다시 평택시·평택군·송탄시 3개 시군으로 분할되었고, 1995년에 재차 도농복합시 평택시로 통합되었다. 행정동 중에 평택역 중심으로 서부쪽은 예전에 평택 중심이라고 하면서 원평동과 동쪽에는 새로 생긴 평택이라면서 신평동이 생겨났다.

신평동(新平洞)내 법정동은 평택동,유천동,합정동일부 지역으로 되어있다, 경부선 철도가 건설된 이후 현재 평택역의 남쪽에 시가지가 형성되었으나 1946년 대홍수를 겪고난 뒤 이전 논의가 일어나고 한국전쟁 이후 새로운 도시 계획에 따라 현재의 지역에 새로이 시가지가 형성된 곳이라는 뜻에서 지어졌다. 평택역, 고속 및 시외 버스터미널이 위치하고 있는 삼남지방의 관문인 교통중심지이다. 평택동은 상가 및 점포가 밀집되어 있는 상업지역이고, 합정동 일부와 유천동은 경지 면적이 많은 농촌지역으로 특히 시설원예 및 특용작물을 생산하는 영농 지역이다

그리고 원평동(原平洞)내 법정동은 금문동,평택동 일부지역으로 되어 있다. 경부선이 부설되고 평택역이 생기면서 시가지가 형성된 곳으로 대홍수 이후 수리에 문제가 있어 경부선 동쪽으로 역과 시가지가 옮겨지기 전까지 예전[原]에 평택의 중심지가 있던 곳이라 한다. 싸전거리 쇠전거리 진전거리 용잔 통복개 높은 들 화촌 신덕포 군문포 샛개 삽다리 고잔 및 새터 등 14개의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일제감정기 일본이 평택역 만들면서 소사들, 궁안들, 진위들, 안성들 등에서 생산되는 양곡을 군산을 통해 일본으로 수탈 해 가는 거점지역이었다. 진위군이 평택군으로 행정지명을 변경하면서 일본인들이 삶의 터전 자리를 잡아 신도시을 형성하면서 군청, 경찰서, 은행, 세무서 등 관공서가 들어서던 곳이다. 지금은 건물조차 흔적을 찾아 볼수 없다. 있는 것도 지키지 못하는 판에 아픈 과거를 상기 시켜야 만 하는가, 이제와서 일제감정기 생긴 건물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면서 표지석을 세우려고 하고 있다. 우리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도 역사이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역사이다, 지역 후손들에게 어떻게 남겨야 할까. 평택(平澤)의 본향(本鄕)은 평택현(팽성읍 주변일대)이고, 근원(根源)은 진위현(지금의 진위면 중심으로 송탄,서탄면, 오성면, 고덕면, 통복동, 평택역 주변 일대)이다, 늦어지만 본향(本鄕)과 근원(根源)을 제대로 알려야 하겠다. 앞으로 기회가 되다면 합정동과 평택동으로 변경하면 어떻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평택시는 지난 1995년 3개시군이 통합 당시 32만 명에서 24년 만에 50만 명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앞으로 시민을 위해 “양적 · 질적 성장을 위해 인구 50만 대도시에 걸맞은 자족기반을 구축하고 제2의 도약을 위해 모든 행정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제2의 도약을 위해 모든 행정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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