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문 성남시 분당구 이매2동장

불현듯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 ‘칼’이 생각났다. 칼은 대한제국의 청년 이재명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조선과 고종황제는 국권수호를 위해 대한제국을 성립하였지만 1905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그 암울했던 시절에 을사오적신의 우두머리 매국노 이완용을 명동 한복판에서 칼로 단죄하려 했던 대한 의사義士 이재명 청년이 생각난건 어머니의 추억 밟기 때문이리라!

명동성당과 그 뒤편의 지금은 굳게 닫혀진 어머니가 다녔던 계성여중이 있다. 어머닌 당신의 모교와 성당, 그리고 수녀님의 성스런 수업을 빼먹고 활보했던 명동거리를 기억할까? 설사 기억하지 못하여도 기억너머 저편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으리라. 성당을 뒤로하면서 입구에 다다르자 눈에 들어 온 건 ‘이재명의사 의거 터’, 그를 기억하는 더럽혀진 표지석을 보며 가슴이 답답해져 옴을 다스릴 수 없었다. ‘이재명(1890~1910)은 매국노인 이완용을 척살하려 한 독립운동가 이다. 평북 선천 출생으로 1909년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의 추도식을 마치고 나오는 이완용을 칼로 찔렀으나, 복부와 어깨에 중상만 입히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이듬해 순국하였다.’ 라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기억케 하고 있었다. 12월 22일은 대한제국의 아름다운 열혈남아 이재명이 칼을 조국을 위해 의롭게 사용한 날이다.

온라인을 이용해 손쉽게 들쳐 낼 수 있는 백과사전을 보면 접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 그가 관련된 사건이라며 기록되어진 것은 ‘이완용 피습사건’ 이란다. 자랑스런 독립운동가로 기억하고 있는 그에 대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피습이라니?’ 이는 누구의 관점인 것인가!

형사가 물었다. ‘배후가 누구냐?’ 이재명이 대답했다. ‘나다.’ 또 형사가 물었다. ‘공범은 누구냐?’ 그가 말했다. ‘이런 일에 무슨 공범이 필요한가! 굳이 말한다면 2000만 우리 동포가 공범이다.’ 갖은 고문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호했다.

평양 일신학교를 다닌 그는 1904년 하와이 사탕수수밭에 인부로 갔다가 1906년에는 미국 본토로 건너갔고 도산 안창호 선생이 설립한 한인 독립운동단체인 공립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1907년 공립협회에서 매국행위를 하는 자들의 숙청을 결의하자 자원하였고, 그해 10월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귀국 후에는 중국 등을 다니면서 동지를 규합하며 매국노들을 처단할 것을 결심한 그는 첫 번째 시도를 하게 된다. 1909년 1월 순종황제의 서도 순시 때 이토 히로부미가 동행한다는 사실을 알고 처단하고자 평양역에서 대기하다가 안창호가 순종황제에 대한 위험을 이유로 발포를 만류하자 그만두게 된다.

또 다른 기회를 엿보던 중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 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귀국하여 우선 을사오적신을 척살하기로 마음먹었다. 12월 22일 명동성당에서 거행되는 벨기에 황제의 추도식에 이완용이 참석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성당 입구에서 군밤장수로 변장하고 있다가 매국노 이완용이 인력거를 타고 지나갈 때 칼을 꺼내들고 향했다. 그를 제지하는 인력거꾼을 거꾸러뜨리고는 이완용의 허리를 찌르고 어깨 등을 사정없이 난자하였다. 목적을 달성한 그는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일경들에게 칼을 맞은 채 체포당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완용은 목숨을 부지하고 이듬 해 인 1910년 경술국치를 성사시켰다.

청년 이재명은 많은 방청객이 운집한 재판정에서 역적 이완용의 죄목을 통렬히 꾸짖고 조금도 굴함이 없이 일본인 재판장에게 큰소리쳤다. ‘너희 법이 불공평하여 나의 생명은 빼앗지만 나의 충혼은 빼앗지 못할 것이다. 지금 나를 교수형에 처한다면 나는 죽어 수십만 명의 이재명으로 환생하여 너희 일본을 망하게 할 것이다.’ 그는 1910년 9월 30일 순국하였다. 아름다운 청년 의사義士 이재명에게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되었고 2001년 12월에는 이 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칼의 향기가 있다. 내게 그 향기는 조선의 얼을 외쳤던 신채호일 때도 있고 조선의 개국을 설계한 정도전일 때도 있다. 또한 대한독립을 외치며 쓰러져간 수많은 선열이기도 하다. 지금엔 그 향기가 대한민국 곳곳, 내가 살며 일하는 이 곳 성남시에도 진하게 퍼지기를 소망한다. 추위가 깊어져 한기가 가슴을 옥죄니 쓰러져 가던 조선의 대한제국, 아름다운 청년 이재명이 더더욱 그립다. 나는 그가 외쳤던 수십만의 이재명 중 하나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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