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현해 놓은 연산군의 유배 모습.
▲ 재현해 놓은 연산군의 유배 모습.

강화와 교동은 고려부터 조선까지 1000년 동안 왕족들의 유배지였다. 서울과 가까운 섬이기에 감시와 격리가 쉬웠기 때문이다. 고려의 희종과 강종, 충정왕, 우왕, 창왕, 조선의 광해군, 안평대군, 영창대군, 사도세자의 장남 은언군, 흥선대원군의 손자 영선군 등이 유배됐다.

정치적 반대파를 잔혹하게 숙청하는 사화(士禍)를 일으키며 폭정을 일삼던 조선 10대 왕 연산군(1476∼1506)이 중종반정으로 폐위돼 위리안치(圍籬安置, 유배된 죄인이 거처하는 집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가두어 두던 일)된 곳도 바로 교동도다.

연산군은 이곳에 유배된 지 두 달 만에 역질에 걸려 31살의 나이에 숨졌다. 연산군의 무덤은 부인인 폐비 신씨의 청에 따라 중종 7년에 경기도 양주(현 도봉구 방학동)로 이장했다. 연산군이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만들어진 '교동도유배문화관'에서는 이런 왕족 유배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한쪽에는 탱자나무를 두른 초가집 안에 들어가 앉은 연산군과 주변을 지키는 나인, 군사 등을 모형으로 재현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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