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현(張智賢) 병사는 의병을 이끌고 우평야(雨坪野)에서 왜적과 맞서

영동에서 남쪽으로 약 40km 정도 떨어진 용화면 안정리(雁汀里) 영동(永同)에서 남쪽으로 약 18.5Km 정도 떨어진 매곡면(梅谷面) 유전리(柳田里) 앞들을 피야평(皮野坪) 또는 핏들이라고 불려오는데 원래 이들을 우평야(雨坪野)로 불리워 왔었다. 

우평야(雨坪野)가 皮坪野(피평야) 또는 핏들이라 불리워 지게 된 이유는 임진왜란 당시의 슬픈 이야기가 서려 있다. 

1592년(선조 25년) 5 월 9 일 영동현감(永同懸監) 한명윤(韓明胤)이 총 쏘는 사람을 거느리고 요로 요로에 숨어 있다가 적 13명을 사살하였는데 그중 한사람이 말을 타고 갑옷을 입고는 붉은 깃발을 앞세우고 여러 군사를 지휘하는 것을 쏘아서 죽여 버렸다. 

왜적이 갖고 있는 군 장비를 빼앗은 것만 해도 십여 점이 되었다. 그러나 워낙 힘이 부족하여 왜적 전부를 잡지는 못하였다. 5월 13일 영동 현감은 호소문을 발표해서 의병을 모집했는데 그 호소문에는  "나라 일이 이같이 되니 심히 분하도다 적이 서울을 침범하였으니 백성으로서 마음 어찌 통분치 않으랴 또한 난리에 참여한 부모는 모두 죽고 처자는 잡혀가고 집은 불타 버리고 모든 집이 한결같이 비어 버렸으니 천지간에 이보다 더 큰 원수가 또 어디 있겠느냐 참으로 분하고 원통할 일이로다. 

앞으로 이를 막지 못하면 후회가 클 것이니 동지 여러분은 힘을 모아 보복할 것을 생각하지 않겠느냐 귀천을 막론하고 용감한 젊은 사람들은 이 달 17일에 영동군청 근처에 모여 주기 바란다. 

글을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서로 알려서 호소문을 빨리 이해하고 이 복수전에 참여하면 충신의사의 의거가 될 것이다" 라고 호소하였다. 

이에 영동의 많은 젊은이가 의병이 되려고 모여들었다. 훨씬 뒤의 일이지만 영동 현감 부인은 산 속에서 난을 피해 있다가 왜적에게 잡힌 몸이 되었다. 그들에게 끌려간 부인은 9 월 5 일 그들의 못된 짓을 당하기 전에 자살해 버렸다. 

당시 이 고을 출신 장지현(張智賢) 병사는 의병을 이끌고 지금의 매곡면 유전리 우평야(雨坪野)에서 왜적과 맞서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추풍령(秋風嶺)과 황간(黃澗)을 빼앗기게 되면 뒤에 있는 영동 고을도 쉽게 무너지기 때문에 장병사는 죽을 힘을 다하여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때마침 장병사와 함께 싸운 의병 중에 피(皮) 씨 성을 가진 의병이 있는 힘을 다하여 적과 싸웠는데 아깝게도 그는 왜적이 쏜 총탄을 맞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장지현(張智賢)의 의병 부대는 뒤로 뒤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의병을 이끌던 장병사도 황간으로 후퇴하는 도중에 전사하고 말았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사람들은 의병 피씨가 싸우다 죽은 들을 피야평(皮野坪)또는 핏들이라 부르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전해 온다고 한다.

또한 영동군 학산면 지내리에는 갈기산이 있다. 학산면 지내리와 양산면 호탄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서, 험준하지만 울창한 숲과 바위 그리고 금강이 어우러져 한폭의 풍경화를 연상시키는 산이다. 산머리 부분이 긴 암능으로 이어져 마치 말의 갈기처럼 생겨 갈기산이라 한다.

특히 등산로가 아름다워 지금도 등산객이 끊이지 않는 산이다. 갈기산 등산로에는 아흔개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 아흔 함박골이 있는데 이곳에는 큰 굴과 작은 굴이 아래위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곳이 있는데 큰 굴에는 비둘기 배설물로 거름을 할 정도로 산비둘기가 많았다 하며 작은 굴은 가로세로 5m와 10m로 큰 전쟁이 날 때마다 마을사람들이 이곳으로 피신을 했다 한다.

이 굴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해서 지금도 갈기산을 등산하는 등산객들이 쉬어 가는 곳이다. 특히 아흔 함박골에는 70m - 80m 정도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는데 옛날에는 뜸북이가 서식하고 있었다 한다.

그런데 마을에 큰 재앙이 덮치거나 전쟁이 일어나 마을사람들이 죽거나 적에게 기면 신기하게도 이 골짜기에 있는 수천 마리의 뚬북이떼가 마을이 떠나가도록 울었다 한다.

마을의 재앙을 슬퍼하듯이 그 소리가 너무나 처량하고 구슬퍼서 듣는 이의 가슴이 미어졌다 한다. 그래서 이 골짜기를 학산면 지내리 모리마을 사람들은 "뜸북이 골"이라 부른다. 

지금은 평상시에도 뜸북이의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그 이야기는 마을 어르신들을 통해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학산면 지내리 뜸북이 골이 있는 모리마을은 이제는 뜸북이 골에서 뜸북떼가 마을사람들을 위해 구슬피 우는 일이 없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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