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됐는데 너무 좋은데, 가슴이 아픈 하늘과 땅이 흐느낀다. 갑자기 맥이 턱 풀려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안타깝게도 대통령이 없는 세상이 되니 세월호는 기적처럼 무사히(?) 올라왔다. 그동안 시간을 끈 이유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들이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140개의 뚫린 구멍에서 흘러나올 의문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거짓말은 하면 할수록 늘고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나가게 마련이다. 꽃잎보다도 여린 학생들의 생명이 걸렸던 큰 사고였다. 그 당시 필자는 모 시장 예비후보의 선거사무소에서 기획을 맡았었다. 바쁜 일정에도 우리는 잠시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애도했다. (그 틈을 노려 큰딸과 막내딸이 아무리 바빠도 같이 저녁 좀 먹자고 찾아왔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허망하고 또 억울하다. 맘만 먹으면 단 3일이면 끝낼 일을 3년씩이나 부모들 애간장을 다 녹이면서 처참하게 녹슬도록 세월만 보냈단 말인가. 뒤늦게 촛불이건 태극기건 거리에서 광장에서 마치 자기 일처럼 외쳤던 이들 많다. 토요일 하루쯤은 가족의 생계조차 내팽개치고 참여했던 이들도 상당수가 있다. 그 결과 대통령이 내려갔고 세월호가 올라왔다. 쥐도 새도 모르게 감추고 싶었을 사건들도 부지기수란다. 분명히 속속 드러날 건 안 봐도 뻔하다. 유별나게 꾸며야 할 나이가 지났음에도 날마다 올림머리로 꾸며본들 ‘바보, 멍청이, 등신, 쪼다’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필자의 옆지기(?)는 미용실에 언제 가봤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며 곱게 눈을 흘긴다)

조지 오웰이던가, ‘우리가 편안하게 잠을 청할 수 있는 것, 누군가 우리를 대신해 싸우기 때문이다’라던 이. 그런데 우리가 왜 싸움판에 껴들었지? 이득을 챙긴 것도 아니고 오히려 손해까지 감수하면서 누가 누구를 대신했던가. 때로는 현장에서 찬반으로 나눠 사생 결단이라도 낼 것처럼 맞붙기도 했다. 지금도 ‘세월’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세월호’를 연상한다. 가라앉는 배, 물은 점점 차오르는데 어린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그 말을 믿으며 당연히 믿어 의심치 않으며 기다렸을 어린 학생들. 그 틈에 저는 살겠다고 속옷 바람으로 헐레벌떡 도망쳐 구명정으로 오르던 선장의 추악한 모습, 생각만 해도 눈에서 열불이 훨훨 타오른다, 물론 처지와 상황이 다르지만, 남이야 죽건 말건 자신만은 살겠다는 유사한 모습은 흔해 빠진 살벌한 세상이다.

민주화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약한 우리를 위함보다는 강한 자기네끼리 더 큰 세력유지를 위한 먹자판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씁쓸하다. 면면을 살펴보지 않더라도 그럴싸하게 지었던 정당의 이름에서 그 속이 빤히 보인다. 해방 이후 미국에서 버터만 묻혀 먹다가 돌아와 공짜로 정권을 인수한 자유당 이승만, 육군 소장 박정희의 공화당, 역시 육군의 전두환과 노태우 시절에 자유, 공화, 민주와 정의를 내세웠다. 그 이후 민간 출신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이름값 못하기보다 아예 역주행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벌써 난리다. 꽃 피는 5월부터는 새롭게 나라를 이끌어보겠다고 잘하겠다고 바꾸겠다고 대통령 하겠다고 게거품을 무는 대선 후보자들. 우주의 기운이 새누리에 가득 펼쳐졌던 그 시절, 대통령이 사는 청와대를 마치 옆집 언니네 집처럼 들락거렸던 최 씨 아줌마의 외침을 상기하시라. “우리나라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역시 일리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구조에서 민주주의는 사치품이다. 아쉬울 때만 가끔 들먹이는 게 그 좋다는 민주주의다. 그나저나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수호하느라 머리카락까지 하얗게 센 그 최 씨 아줌마의 바람이 5월이 지나면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

큰일 날 뻔했다. 칼럼을 쓰면서 ‘새롭게’라는 단어가 튀어나와 천만다행이다. 지난해 이맘때쯤 부산으로 시집간 막내딸의 생일이 바로 내일인데 하마터면 깜빡할 뻔했다. 양력, 음력 모두 1일에 태어난 막내딸. 눈에 넣고 다녀도 아프지 않을 귀염성 많은 예쁜 딸이다. 몇 날 며칠간 국어사전을 샅샅이 뒤지며 좋은 단어를 찾았었다. 없다. 돌림자를 따르자니 너무 평범하다. 그때, 길을 걷다가 건물 외벽에 내려쓴 현수막은 고통을 단번에 확 풀어주었다. ‘새롭게 하소서’ 그렇다. ‘새롬’이다. 막내딸은 지금도 ‘난 할머니가 돼도 새롬이야?’라면서 불평이다. 그러나 내가 봐도 참 좋게 잘 지은 이름이다. (때마침 부산 사위의 전화다. 새롬이 생일 챙겨주시게, 멀리 있어도 둘 다 똑같이 사랑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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