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소고기죠?”
“안 팝니다, 1근은.”

아는 체하며 1근만 썰어서 달랬더니, 주인은 칼을 움켜쥐고 내 얼굴을 희한하다는 듯 빤히 쳐다본다. 몰랐다. 식당에서 1인분이 200g이니 1근이면 3인분, 푸짐하게 먹을 양이 아니던가. 주말에 춥겠다는 예보가 있어 몸보신 할 요량으로 그동안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곁눈질만 하며 지나쳤던 푸줏간으로 발걸음도 당당히 들어갔었다. 무려 1근이 4만2천 원이다. 왕년에 소 장사 큰아들이 개처럼 꼬리 내리고 황급히 빠져나왔다. 같은 값이면 소고기로 뱃속을 든든하게 채우려다가 썰렁했던 금요일 저녁나절의 맥 빠지는 귀가였다. 

필자의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께서는 ‘밥이 보약’이라면서 제사상에 올릴 때 말고는 소고기는 아예 쳐다보지도 말라 하신다. 말씀이야 사료 먹인 소라서 되새김질도 안 해 고기 맛이 예전만 못하다고 하신다. 비싸니까 부담 주지 않으시려는 뜻인 줄 왜 모르리. 소고기는 예나 지금이나 귀하다. 군대에서도 ‘황우도강탕’이 있었다. 취사병의 국자에 재수 좋으면 손톱만 한 기름 덩이 한 점 떴던 그 소고깃국, 그야말로 황소가 장화 신고 건너갔다는 국물이다. 

옛날 아버님 밥그릇은 크기도 컸다. 위로 올라온 게 한 그릇은 조이 되는 고봉밥이었고, 우리를 위해 언제나 조금씩은 남겨주셨다. 아버님이 남긴 밥에 나물을 잔뜩 넣고 비벼 먹었던 우리지만 아버님의 우직한 뚝심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렇다. 조금씩이라도 남겨주려는 마음도 없이 ‘내가 잘못한 게 도대체 뭐냐?’는 식의 대통령에서부터 윗선에 앉아 개기름 철철 흐르는 자들은 모두 자신들의 잘못은 반성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타인에게 핑계를 돌려 덤터기 씌울 궁리에 골몰하고 있다. 이제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요즘에는 국민이 먼저 안다. (거짓을 덮는 이불은 머리를 덮으면 다리가, 다리를 덮으면 머리통이 보이도록 작게 만들었다)

국정농단의 도가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덮으면 덮을수록 엄청나게 드러난다. 벌써 다섯 번째다. 주말마다 광장으로 나가 촛불을 켜고 대통령에게 외치는 게 일상의 행사가 돼버렸다. 한창 발랄하게 세상모르며 철부지로 자라야 할 어린 중학생들까지 거리로 나왔다. 어이없고 기가 막힐 노릇이다. 외모가 뭐 그리 중하관데 ‘태반주사’, ‘백옥주사’, ‘마늘주사’도 모자라 입에 담기도 민망한 ‘비아그라’, ‘팔팔정’까지 구매했다는 대목에 와서는 말문이 콱 막혀버린다. (참고로, 미국 대통령은 화장실 휴지까지도 자신의 월급으로 낸다고 한다)

첫눈이 내려 기분 좋았어야 했던 날, 하늘도 아시는지 금세 진눈깨비로 변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광장으로 모였다. 청와대를 향해 걸어가며 ‘퇴진하라’, ‘하야하라’는 물론 ‘내려와라, 물러나라, 저리가라’ 외쳤다. 그런데도 들은 체도 않는 대통령은 누구의 대통령이란 말인가. 자신의 말처럼 우리 국민은 결단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고집불통 그만 꺾고 하루라도 빨리 무슨 변명이라도 하시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시라. 부끄러워 아이들 앞에서 고개도 들지 못하겠다.

세상물정 모르는 대통령 곁에서 국고를 쌈짓돈 쓰듯 했던 자들은 ‘억대’도 푼돈이겠지만, ‘십만’도 아까워 가족끼리 소고기를 먹지 못하는 국민도 부지기수다. 좋았던 시절에는 권력에 빌붙어 호의호식하며 단물만 쪽 빨아 먹던 비굴한 정치꾼은 더더욱 나쁜 자들이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슬그머니 뒤로 빠져 마치 자신은 성인군자라도 되는 양 처신하는 꼴같잖은 모양새가 우습다. 그런 자들 때문에 오늘날 이 지경까지 이른 게 아니던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칠 것밖에 우리에게 남은 게 더 있겠느냐. 비록 맹물에 밥 말아 먹고서라도 6차, 10차가 아니라 100차라도 광장으로 나가 버틸 오기가 생긴다. 비아그라가 아니더라도 이미 국민은 열불이 올라 혈관이 최대로 확장돼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지난 주말에는 두꺼운 얼굴만큼이나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대통령에게 치가 떨려 촛불이 활활 타올라 평화의 횃불로 번졌다. 장하다, 11·26 무혈혁명이여! 오늘부로 역사는 뒤바뀌어 찬란하게 빛날 것이매.

저작권자 © 일간경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